《예술가들이 사랑한 컬러의 역사 CHROMATOPIA》 후기 - 색을 더 깊게 보게 만든 책
데이비드 콜즈의 《예술가들이 사랑한 컬러의 역사 CHROMATOPIA》를 읽고 디자이너 관점에서 느낀 점을 정리했습니다. 색의 역사와 안료 이야기가 캐릭터 배색, 인쇄물 작업, 디자인 색감 공부에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 이야기합니다.
디자인을 하다 보면 색을 정말 자주 고릅니다.
캐릭터를 만들 때도 색을 고르고, 포스터나 카드뉴스를 만들 때도 색을 고르고, 인쇄물을 만들 때도 색을 고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색을 고른다는 일이 단순히 “예쁜 색을 찾는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같은 파랑이라도 어떤 파랑은 차갑고, 어떤 파랑은 고급스럽고, 어떤 파랑은 어린이 콘텐츠에 어울리지 않게 무거워 보입니다. 같은 빨강이라도 어떤 빨강은 귀엽고 발랄하지만, 어떤 빨강은 너무 강해서 다른 요소를 다 눌러버리기도 합니다.
《예술가들이 사랑한 컬러의 역사 CHROMATOPIA》는 이런 색을 조금 더 깊게 바라보게 만든 책이었습니다. 이 책은 단순한 배색 가이드가 아닙니다. 색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떤 재료에서 왔고, 왜 어떤 시대에는 사랑받고 또 어떤 색은 사라졌는지를 보여줍니다.
디자이너 입장에서 읽으면 색을 화면 속 숫자나 팔레트로만 보지 않고, 역사와 재료와 감각이 쌓인 대상으로 보게 됩니다.
이 책을 읽게 된 계기
색채 공부를 하다 보면 보통 색상환, 보색, 유사색, 명도, 채도 같은 개념을 먼저 접하게 됩니다. 물론 이런 기본 개념은 정말 중요합니다. 그런데 실무에서 색을 고를 때는 이론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부분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캐릭터 색을 정할 때 “보색 관계니까 이 조합이 맞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결과가 나오는 건 아닙니다. 타깃이 어린이인지, 성인인지, 브랜드가 밝은 이미지를 원하는지, 차분한 이미지를 원하는지에 따라 같은 색도 전혀 다르게 작동합니다.
인쇄물 작업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화면에서는 선명해 보였던 색이 실제 인쇄에서는 탁해 보이거나, 종이 질감에 따라 같은 색이 다르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색을 단순히 RGB 값이나 CMYK 값으로만 보는 데 한계가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이 흥미로웠습니다. 색을 결과물이 아니라 출발점부터 보여주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색이 어떤 재료에서 나왔는지, 왜 귀하게 여겨졌는지, 어떤 예술가들이 어떻게 사용했는지를 따라가다 보면 색이 훨씬 입체적으로 느껴집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내용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색마다 이야기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보통 색을 빨강, 노랑, 파랑처럼 간단하게 부릅니다. 디자인 프로그램에서도 색상값을 입력하면 바로 원하는 색을 만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을 읽다 보면 과거의 색은 그렇게 간단하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어떤 색은 광물에서 나오고, 어떤 색은 식물이나 동물에서 나오고, 어떤 색은 우연한 화학적 발견에서 만들어졌습니다. 색 하나를 얻기 위해 굉장히 많은 시간과 기술, 비용이 필요했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알고 나면 색을 조금 다르게 보게 됩니다. 예를 들어 파랑은 그냥 파랑이 아니라, 어떤 시대에는 매우 귀하고 상징적인 색이었을 수 있습니다. 흰색도 단순히 깨끗함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재료와 표면, 빛의 반사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을 줄 수 있습니다.
디자이너가 모든 안료의 역사를 외울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색이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시대와 문화, 재료가 쌓인 결과라는 점을 아는 것만으로도 배색을 대하는 태도가 조금 달라집니다.
캐릭터 배색을 볼 때 도움이 됐던 점
캐릭터 디자인에서 색은 성격을 만드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선과 형태가 캐릭터의 구조라면, 색은 첫인상에 가깝습니다.
귀여운 캐릭터를 만들 때 흔히 파스텔톤을 많이 사용하지만, 파스텔이라고 해서 무조건 귀여운 것은 아닙니다. 어떤 파스텔은 부드럽고 포근하지만, 어떤 파스텔은 힘이 없어 보일 수도 있습니다. 또 채도를 조금만 높여도 캐릭터가 훨씬 활발해 보이고, 명도를 낮추면 성숙하거나 차분해 보입니다.
《CHROMATOPIA》는 직접적인 캐릭터 배색 책은 아니지만, 색을 더 세밀하게 구분해서 보게 해줍니다. 빨강 하나도 어떤 빨강인지, 노랑 하나도 어떤 재료와 분위기를 가진 노랑인지 생각하게 만듭니다.
이런 관점은 캐릭터 작업에도 도움이 됩니다.
“이 캐릭터는 핑크색이야”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부드러운 분홍인지, 생기 있는 코랄인지, 장난스러운 핫핑크인지”까지 생각하게 되는 것이죠.
특히 캐릭터를 굿즈나 이모티콘으로 확장할 때는 색의 안정감이 중요합니다. 화면에서는 귀여웠던 색이 인쇄물이나 상품에서는 너무 연하거나 탁하게 보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색을 고를 때 처음부터 재료와 출력 환경을 함께 생각하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인쇄물 작업에서 더 와닿았던 부분
이 책은 안료의 역사와 제작 이야기를 다루기 때문에 인쇄물 작업을 하는 사람에게도 꽤 흥미롭습니다.
디지털 작업을 오래 하다 보면 색을 화면 중심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모니터에서 좋아 보이면 그대로 좋은 색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실제 인쇄를 해보면 색은 종이, 잉크, 코팅, 조명에 따라 달라집니다.
저도 인쇄물 작업을 하면서 화면에서는 괜찮았던 색이 출력 후 생각보다 탁해 보이는 경험을 했습니다. 특히 선명한 블루, 그린, 형광에 가까운 색은 화면과 인쇄물의 차이가 크게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색이 원래부터 물질과 깊게 연결되어 있었다는 점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색은 빛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재료이기도 합니다. 디지털 화면에서는 색이 가볍게 바뀌지만, 실제 물성으로 넘어가는 순간 색은 훨씬 현실적인 문제가 됩니다.
그래서 인쇄 작업에서는 모니터 색만 믿지 않고, 종이 샘플이나 출력 테스트를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책을 읽으며 이 당연한 사실이 더 선명하게 느껴졌습니다.
이 책의 장점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색을 아름다운 이미지와 함께 깊이 있게 보여준다는 점입니다. 단순히 “이 색은 이런 의미입니다”라고 설명하는 책이 아니라, 색이 태어난 과정과 예술가들이 색을 사용한 방식을 함께 보여줍니다.
그래서 읽는 재미가 있습니다. 색채 이론서처럼 공부해야 한다는 부담보다, 색에 얽힌 이야기를 따라가는 느낌이 강합니다. 예술, 역사, 과학, 디자인이 자연스럽게 섞여 있어서 한 분야로만 읽히지 않는 점도 좋았습니다.
디자이너에게는 색을 고르는 언어를 넓혀준다는 점이 장점입니다. 실무에서는 색을 설명해야 하는 순간이 많습니다. “이 색이 더 예뻐서요”라고 말하는 것보다 “이 색은 조금 더 차분하고 깊은 인상을 주기 때문에 전체 톤과 잘 맞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책은 그런 색의 감각을 조금 더 풍부하게 만들어줍니다. 당장 팔레트 하나를 제공해주는 책은 아니지만, 색을 보는 눈을 천천히 넓혀주는 책에 가깝습니다.
아쉬웠던 점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이 책은 실무 배색을 바로 알려주는 책은 아닙니다. 그래서 “캐릭터 배색 조합 100개”나 “인테리어 컬러 팔레트 추천” 같은 내용을 기대한다면 조금 다르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또 색의 역사와 안료 이야기가 중심이라, 당장 디자인 작업에 적용하려면 스스로 연결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읽었다고 해서 바로 배색 실력이 좋아지는 책은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오히려 이 점이 이 책의 성격이라고 생각합니다. 빠르게 답을 주는 책은 아니지만, 색을 더 깊고 느리게 바라보게 해줍니다. 색을 자주 사용하는 디자이너라면 이런 책도 한 번쯤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이런 디자이너에게 추천합니다
이 책은 색을 좋아하는 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 작가에게 추천하고 싶습니다. 특히 캐릭터 배색이나 인쇄물 작업을 자주 하는 사람이라면 흥미롭게 읽을 수 있습니다.
색채 이론을 공식처럼 외우는 것이 지루했던 사람에게도 좋습니다. 이 책은 색을 암기 대상이 아니라 이야기와 재료가 있는 대상으로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지금 당장 빠르게 쓸 배색 조합이 필요한 사람이라면 《배색 아이디어 수첩》 같은 실용적인 책을 먼저 보는 것이 더 낫습니다. 《CHROMATOPIA》는 실무 참고서라기보다 색에 대한 감각과 배경지식을 넓혀주는 책에 가깝습니다.
작업에 연결해본다면
이 책을 읽고 바로 해볼 수 있는 것은 내가 자주 쓰는 색을 더 세밀하게 분류해보는 일입니다.
예를 들어 “파랑을 자주 쓴다”에서 끝내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파랑이 어떤 파랑인지 살펴보는 것입니다. 밝은 하늘색인지, 회색이 섞인 블루인지, 진한 코발트 계열인지, 보라가 살짝 섞인 블루인지 구분해보면 좋습니다.
캐릭터 배색을 할 때도 색 이름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붙여보면 도움이 됩니다. “분홍 캐릭터”가 아니라 “부드럽고 따뜻한 코랄 핑크를 가진 캐릭터”, “차분한 크림색과 낮은 채도의 그린을 쓰는 캐릭터”처럼 정리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색을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으면 작업 방향도 더 분명해집니다. 클라이언트에게 설명할 때도 좋고, 나중에 같은 캐릭터를 굿즈나 콘텐츠로 확장할 때도 색의 기준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인쇄물 작업에서는 이 책을 읽은 뒤 색을 화면 속 값으로만 보지 않고 종이와 잉크, 질감까지 함께 생각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같은 디자인이라도 무광지, 유광지, 두꺼운 종이, 얇은 종이에서 전혀 다르게 느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며
《예술가들이 사랑한 컬러의 역사 CHROMATOPIA》는 색을 더 깊게 보고 싶은 사람에게 좋은 책이었습니다. 배색 공식이나 실무 팔레트를 바로 알려주는 책은 아니지만, 색이 어디에서 왔고 어떻게 사랑받아왔는지를 보여주면서 색에 대한 시야를 넓혀줍니다.
디자이너에게 색은 매일 쓰는 도구입니다. 하지만 너무 자주 쓰다 보면 오히려 가볍게 대하게 될 때도 있습니다. 이 책은 그런 색을 다시 천천히 들여다보게 만듭니다.
캐릭터 배색을 하든, 인쇄물을 만들든, 콘텐츠 디자인을 하든 색은 늘 첫인상을 좌우합니다. 그래서 색을 더 잘 쓰고 싶다면 단순히 예쁜 팔레트를 많이 저장하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색이 가진 배경과 물성을 이해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색을 숫자가 아니라 이야기로 보게 되는 책.
저에게 《CHROMATOPIA》는 그런 느낌으로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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