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의 디자인》 하라 켄야 리뷰|무인양품을 좋아하던 캐릭터 디자이너가 읽고 달라진 것들
하라 켄야의 《디자인의 디자인》 도서 리뷰. 무인양품을 오래 좋아해온 캐릭터·굿즈·일러스트 디자이너가 책을 읽으며 작업 방식과 디자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정리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이 책을 처음 집어 든 이유는 하라 켄야라는 이름보다 무인양품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원래부터 무인양품을 좋아했습니다. 매장에 들어가면 나무와 종이, 패브릭이 만들어내는 차분한 분위기도 좋았고, 제품마다 필요 이상으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점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특별히 화려하지 않은데도 하나의 공간 안에서 모든 물건이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모습이 좋았어요.
캐릭터와 굿즈, 일러스트 작업을 주로 하는 저에게 무인양품의 디자인은 조금 낯선 방향이기도 했습니다. 캐릭터 작업은 보통 개성과 표정, 색상, 기억에 남는 특징을 만드는 일이 중요합니다. 사람의 눈에 띄어야 하고, 귀엽거나 재미있다는 인상을 빠르게 전달해야 하죠.
반면 무인양품의 디자인은 자신을 크게 주장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제품과 매장의 분위기는 분명합니다. 강하게 말하지 않는데도 정체성이 있다는 점이 늘 신기했습니다.
《디자인의 디자인》 역시 첫인상부터 무인양품과 닮아 있었습니다. 흰 바탕에 단정하게 놓인 제목과 군더더기 없는 레이아웃을 보며 “이 책 자체가 하나의 디자인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서 남은 것은 예쁜 표지에 대한 감상이 아니었습니다. 캐릭터를 더 귀엽게 그리는 방법이나 굿즈를 더 눈에 띄게 만드는 기술보다, 왜 이 형태를 만들고 있는지 먼저 질문해야 한다는 생각이 오래 남았습니다.
하라 켄야는 무인양품의 아트 디렉터로 잘 알려진 일본의 디자이너입니다. 《디자인의 디자인》은 그의 대표 작업을 소개하는 책이라기보다, 디자인을 어떤 태도로 바라보고 일상의 평범한 사물에서 어떻게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는지를 설명하는 책에 가깝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디자인은 무엇인가를 더 화려하게 만드는 일이 아니라, 익숙한 것을 다시 보고 그 안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는 일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1. 캐릭터를 만드는 일도 문제를 다시 발견하는 일이었습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저는 디자인을 주어진 문제를 시각적으로 해결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캐릭터 제작을 의뢰받으면 브랜드의 특징을 분석하고, 그에 어울리는 외형과 성격을 만드는 것이 제 역할이라고 봤습니다. 굿즈를 만들 때는 캐릭터가 제품에 잘 어울리도록 배치하고, 일러스트 작업에서는 전달해야 할 장면과 감정을 보기 좋게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이런 방식은 지금도 실무에서 중요합니다.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결과물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일정과 목적에 맞게 완성하는 것은 디자이너의 기본적인 책임입니다.
하지만 하라 켄야는 이미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인 문제를 다시 바라보는 태도를 중요하게 이야기합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캐릭터 외주를 진행하던 방식을 돌아보게 됐습니다.
클라이언트가 “좀 더 귀여운 캐릭터로 만들어주세요”라고 하면 저는 눈을 크게 할지, 몸의 비율을 줄일지, 색상을 더 밝게 할지부터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정말 필요한 것이 단순히 더 귀여운 외형이었는지는 먼저 확인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브랜드가 소비자에게 너무 딱딱하게 보이는 것이 문제인지, 기존 캐릭터가 다양한 상황에 활용하기 어려운 것이 문제인지, 굿즈로 제작했을 때 특징이 잘 드러나지 않는 것이 문제인지에 따라 해결 방식은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캐릭터가 귀엽지 않은 것이 아니라 감정 표현이 부족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외형은 충분히 매력적이지만 자세와 표정의 변형이 어려워 콘텐츠에서 반복적으로 사용하기 힘든 경우도 있습니다.
이 책을 읽은 뒤에는 캐릭터 작업을 시작할 때 외형보다 먼저 질문하려고 합니다.
이 캐릭터가 해결해야 하는 진짜 문제는 무엇일까?
캐릭터 디자인도 단순히 예쁜 그림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브랜드와 사람 사이에 어떤 관계를 만들 것인지 정의하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 무인양품을 좋아했던 이유를 뒤늦게 이해했습니다
저는 오래전부터 무인양품을 좋아했지만, 정확히 어떤 점이 좋았는지는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깔끔해서 좋다거나, 나무와 흰색이 어우러진 분위기가 편안하다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디자인의 디자인》을 읽으며 제가 좋아했던 것은 특정한 스타일보다 사용자를 방해하지 않는 태도에 가까웠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무인양품의 제품은 강한 개성을 앞세워 “이것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여러 공간과 생활 방식 안에 자연스럽게 들어가고, 사용하는 사람이 자기 방식으로 의미를 채울 수 있는 여지를 남깁니다.
이 점은 캐릭터 작업과 정반대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캐릭터는 일반적으로 분명한 성격과 표정, 기억에 남는 특징이 필요합니다. 너무 무난하면 사람들에게 기억되지 않고, 굿즈나 콘텐츠로 확장하기도 어렵습니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나니 캐릭터 역시 모든 것을 처음부터 설명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격과 세계관, 감정을 지나치게 자세하게 규정하면 오히려 보는 사람이 자신의 경험을 투영할 공간이 줄어들 수 있습니다. 반대로 적당한 여백을 남긴 캐릭터는 사람들이 자신의 감정과 상황을 대입하며 더 오래 좋아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무표정하거나 단순한 얼굴의 캐릭터에 다양한 감정을 투영하는 것도 같은 이유일 수 있습니다. 캐릭터가 모든 감정을 대신 말하기보다, 사용자가 자신의 기분을 채울 수 있는 빈 공간을 남기는 것입니다.
무인양품의 ‘비어 있음’이라는 개념은 캐릭터를 약하게 만드는 방법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이 자기 방식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만드는 방법으로 다가왔습니다.
3. 캐릭터와 굿즈에도 여백이 필요했습니다
저는 캐릭터와 굿즈 작업을 하다 보면 화면을 꽉 채우고 싶은 마음이 자주 듭니다.
캐릭터만 놓으면 심심해 보일 것 같아 주변에 소품을 넣고, 배경 패턴을 추가하고, 문구나 장식을 더합니다. 특히 굿즈는 작은 면적 안에서 눈에 띄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가능한 한 많은 요소를 담으려 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요소가 많다고 해서 캐릭터의 매력이 더 잘 전달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작은 키링이나 스티커, 엽서에서는 캐릭터의 실루엣과 표정이 가장 먼저 보여야 합니다. 주변 장식이 지나치게 많으면 정작 중요한 캐릭터가 묻힐 수 있습니다.
이 책을 읽은 뒤 굿즈 시안을 볼 때도 비어 있는 공간을 다르게 보기 시작했습니다.
이 공간이 정말 부족해서 비어 있는지, 아니면 캐릭터의 형태와 감정을 더 잘 보이게 하기 위해 남겨둔 것인지 생각하게 됐습니다.
만화에서도 비슷했습니다.
컷 안에 배경과 설명을 모두 넣기보다, 인물의 표정만 남겨두는 장면이 오히려 감정을 더 강하게 전달할 때가 있습니다. 말풍선 사이의 공백이나 아무 말도 없는 한 컷이 앞뒤의 대사보다 오래 남기도 합니다.
여백은 정보가 없는 상태가 아니라, 독자가 감정을 느끼고 장면을 해석할 시간을 주는 공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작업을 마친 뒤 이런 질문을 해봅니다.
- 이 장식이 캐릭터의 감정을 돕고 있는가?
- 소품이 없어도 장면의 의미가 전달되는가?
- 굿즈의 작은 크기에서도 캐릭터가 먼저 보이는가?
- 말이나 설명을 하나 줄였을 때 감정이 더 선명해지지는 않는가?
덜어내는 일은 캐릭터 작업에서도 생각보다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분명히 알수록 불필요한 요소를 더 자신 있게 지울 수 있었습니다.
4. 굿즈는 그림을 인쇄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캐릭터 굿즈를 만들 때 처음에는 일러스트를 예쁘게 배치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실제 굿즈는 화면 속 이미지가 아니라 손으로 만지고, 들고 다니고, 생활 속에서 사용하는 물건입니다. 같은 캐릭터를 사용하더라도 종이와 천, 아크릴, 금속처럼 재료가 달라지면 느낌도 완전히 달라집니다.
하라 켄야는 디자인을 시각적인 형태에만 한정하지 않고, 촉감과 공간, 사용자의 경험까지 확장해 바라봅니다.
이 부분은 굿즈 작업과 특히 잘 연결됐습니다.
예를 들어 파우치는 그림이 예쁘게 들어가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원단의 촉감과 지퍼의 움직임, 실제로 물건을 넣었을 때의 크기까지 고려해야 합니다. 책이나 달력 역시 일러스트만큼 종이의 두께, 넘기는 방식, 제본의 형태가 전체 인상을 좌우합니다.
인형이나 인형탈처럼 입체적인 작업에서는 더 분명합니다. 정면에서 예쁘게 보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옆과 뒤에서 보이는 비율, 사람이 착용했을 때의 움직임, 안전성과 시야까지 함께 생각해야 합니다.
이 책을 읽은 뒤에는 굿즈를 캐릭터 그림을 담는 빈 제품으로 보기보다, 캐릭터를 경험하게 만드는 하나의 매체로 보게 됐습니다.
어떤 소재와 크기, 사용 방식이 이 캐릭터의 성격과 잘 어울리는지부터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귀여운 캐릭터라고 해서 모든 제품에 크게 인쇄하는 것이 정답은 아닙니다. 조용하고 작은 포인트로 들어갔을 때 더 오래 사용할 수 있는 제품도 있습니다.
무인양품 제품을 좋아했던 이유도 비슷했습니다. 사용자를 압도하는 디자인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오래 사용할수록 자연스럽게 의미가 쌓이는 디자인이었기 때문입니다.
5. 일러스트를 그릴 때도 모든 것을 설명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일러스트와 만화를 작업하다 보면 독자가 내용을 이해하지 못할까 걱정해 설명을 많이 넣게 됩니다.
캐릭터의 감정을 표정과 자세로 보여주고도 대사로 다시 설명하거나, 배경 소품을 통해 상황을 충분히 보여줬는데도 추가 문장을 넣을 때가 있습니다.
저도 전달이 부족할까 봐 그림과 글을 모두 사용해 같은 내용을 반복한 적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정보가 많아질수록 감정이 더 선명해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독자가 스스로 해석할 여지가 사라지고, 장면이 설명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었습니다.
《디자인의 디자인》에서 말하는 비어 있음은 일러스트와 만화에도 적용할 수 있었습니다.
모든 감정을 완성해서 전달하기보다, 독자가 자신의 경험을 넣을 수 있는 틈을 남기는 것입니다.
캐릭터가 잠시 멈춰 있는 장면이나, 아무 대사 없이 창밖을 보는 컷처럼 명확한 설명이 없는 순간이 오히려 더 많은 감정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특히 제가 만들고 싶은 편안하고 잔잔한 콘텐츠에서는 이런 여백이 중요하다고 느꼈습니다.
강한 사건과 대사가 계속 이어지는 이야기보다, 사람들이 자기 감정을 잠시 내려놓고 머물 수 있는 장면을 만드는 것. 그것도 하나의 디자인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6. 감각을 기르는 방식도 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좋은 그림과 캐릭터를 많이 보는 것이 감각을 기르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인스타그램과 핀터레스트에서 마음에 드는 캐릭터와 굿즈, 색 조합을 저장하고, 유행하는 스타일을 계속 확인했습니다.
이런 자료는 분명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비슷한 그림만 계속 보다 보면 저도 모르게 익숙한 비율과 표정, 색상만 반복하게 되더라고요.
하라 켄야는 평범한 일상을 낯설게 바라보는 태도를 중요하게 이야기합니다.
그 말을 읽은 뒤부터는 캐릭터와 일러스트 자료만 찾기보다 사람들이 생활하는 모습을 더 유심히 보려고 했습니다.
사람이 긴장할 때 손을 어디에 두는지, 피곤할 때 몸이 어떻게 구부러지는지, 강아지와 고양이가 편안할 때 어떤 자세를 취하는지 관찰했습니다. 오래된 문구류나 동네 상점의 포장지, 어린이 책의 색감도 이전과 다르게 보였습니다.
캐릭터의 아이디어는 캐릭터 자료 안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생활 속의 작은 동작과 물건의 형태, 사람이 무의식적으로 하는 행동에서 오히려 더 자연스럽고 설득력 있는 표현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무인양품 매장을 좋아했던 것도 결국 비슷한 이유였던 것 같습니다. 제품 하나만 보는 것이 아니라 물건과 공간, 사람이 사용하는 방식이 하나로 연결된 장면을 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7. 이 책이 제게 불편했던 이유
솔직히 이 책은 읽는 동안 편안하기만 한 책은 아니었습니다.
하라 켄야의 문장은 조용하고 담백하지만, 그 안에 담긴 질문은 제가 작업하면서 애써 지나쳤던 부분을 계속 건드렸습니다.
나는 이 캐릭터를 왜 만들고 있는가?
이 굿즈는 캐릭터 그림만 바꾼 제품은 아닌가?
이 장면은 정말 필요한가?
나는 디자인하고 있는가, 아니면 요청받은 그림을 완성하고 있는가?
외주를 하다 보면 이런 질문을 매번 깊게 생각할 여유가 없습니다.
마감이 정해져 있고,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방향도 분명합니다. 캐릭터 시안이 통과되어야 다음 작업으로 넘어갈 수 있기 때문에 어느 순간부터 “이 캐릭터가 정말 목적에 맞는가?”보다 “어떻게 하면 빨리 컨펌을 받을 수 있을까?”를 먼저 생각하게 됩니다.
그림을 오래 그리다 보면 익숙한 표정과 자세를 반복해서 사용하기도 합니다. 이미 반응이 좋았던 방식이 안전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안전한 방식을 반복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작업이 조금씩 무뎌질 수 있습니다.
이 책은 모든 프로젝트를 철학적으로 접근하라고 요구하지 않습니다. 다만 익숙한 답을 아무 생각 없이 반복하지 않도록 계속 질문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저에게 《디자인의 디자인》은 실무 기술을 배우는 책이 아니라, 작업이 익숙해졌을 때 다시 긴장하게 만드는 책에 가까웠습니다.
8. 읽고 나서 실제 작업에서 달라진 것들
이 책을 읽었다고 제 캐릭터 스타일이나 그림체가 갑자기 달라진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귀엽고 눈에 잘 들어오는 캐릭터를 만들고, 필요하면 화려한 색과 장식을 사용합니다. 다만 작업을 시작하고 판단하는 방식에는 몇 가지 변화가 생겼습니다.
캐릭터의 외형보다 역할을 먼저 생각하게 됐습니다
이 캐릭터가 브랜드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사람들이 어떤 상황에서 만나게 되는지부터 확인합니다.
귀여운 외형을 만드는 것보다 다양한 콘텐츠와 굿즈에서 오래 사용할 수 있는 구조인지 생각하게 됐습니다.
모든 것을 설명하려는 습관이 줄었습니다
캐릭터의 성격과 감정을 처음부터 모두 규정하기보다, 사람들이 자신의 감정을 투영할 수 있는 여백을 남기려고 합니다.
만화에서도 대사와 설명을 줄이고 표정과 장면만으로 전달할 수 있는지 살펴봅니다.
굿즈를 하나의 경험으로 보게 됐습니다
일러스트가 예쁘게 들어갔는지만 보는 것이 아니라 재료와 크기, 손에 닿는 느낌, 실제 사용 방식까지 함께 생각합니다.
캐릭터와 제품의 성격이 잘 어울리는지도 이전보다 더 중요하게 보게 됐습니다.
무인양품을 좋아했던 이유를 제 작업에 연결하게 됐습니다
무인양품처럼 모든 것을 조용하고 미니멀하게 만들고 싶다는 뜻은 아닙니다.
대신 사용자를 방해하지 않고, 오래 곁에 둘 수 있으며, 각자가 자기 방식으로 의미를 채울 수 있는 디자인을 만들고 싶다는 기준이 생겼습니다.
9. 캐릭터 디자이너에게도 도움이 되는 책일까
《디자인의 디자인》은 캐릭터를 그리는 방법이나 굿즈 제작 노하우를 알려주는 책은 아닙니다.
인체 비율이나 표정, 색채, 인쇄 방식처럼 바로 적용할 수 있는 기술을 기대한다면 다소 추상적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캐릭터와 일러스트 작업을 오래 하면서 비슷한 결과를 반복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거나, 그림을 잘 그리는 것 외에 자신만의 작업 기준을 만들고 싶다면 충분히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특히 캐릭터를 단순히 귀여운 그림이 아니라 브랜드와 사람을 연결하는 존재로 보고 싶은 분, 굿즈를 캐릭터가 인쇄된 제품 이상으로 만들고 싶은 분에게 생각할 거리를 줍니다.
저도 모든 내용을 한 번에 이해하지는 못했습니다. 실제 작업을 하다 비슷한 고민을 마주했을 때 뒤늦게 책의 내용이 떠오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한 번 읽고 끝내기보다, 작업의 방향이 흐려질 때 다시 펼쳐보기 좋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치며: 무인양품을 좋아하던 마음에서 시작된 디자인 공부
《디자인의 디자인》을 처음 펼친 이유는 무인양품과 예쁜 표지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난 뒤에는 제가 왜 무인양품을 좋아했는지, 그리고 그 감각을 제 작업에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게 됐습니다.
무인양품처럼 단순한 제품을 만들고 싶다는 뜻은 아닙니다. 캐릭터 작업은 더 분명한 개성과 감정이 필요하고, 일러스트와 만화에는 이야기와 표현도 중요합니다.
다만 모든 것을 강하게 주장하지 않아도 정체성을 만들 수 있다는 점, 사용하는 사람과 보는 사람이 자기 의미를 채울 수 있는 여백이 필요하다는 점은 캐릭터와 굿즈 작업에도 충분히 적용할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을 읽은 뒤에는 클라이언트의 요청을 그대로 그리기 전에 한 번 더 이유를 묻게 됐습니다.
캐릭터에 장식과 설정을 계속 추가하기보다 무엇을 남겨야 하는지 생각하게 됐고, 굿즈를 만들 때도 그림뿐 아니라 사용하는 경험 전체를 보려고 노력하게 됐습니다.
저에게 《디자인의 디자인》은 그래픽 디자이너만을 위한 책이 아니었습니다.
캐릭터와 굿즈, 일러스트, 만화를 만드는 사람에게도 자신이 무엇을 만들고 왜 만드는지를 다시 질문하게 하는 책이었습니다.
무인양품을 좋아하거나, 작업을 오래 이어오면서 자신의 디자인 철학을 한 번쯤 정리해보고 싶은 분에게 추천합니다.
예쁜 작업을 더 잘 만드는 방법보다, 내가 만들고 있는 것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고 싶은 순간에 읽기 좋은 책입니다.
출처 및 참고
- 하라 디자인 연구소 공식 사이트: https://www.ndc.co.jp/hara/
- Japan Design Committee, Kenya Hara 프로필: https://designcommittee.jp/en/member/hara_kenya.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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